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토 스코르체니 (문단 편집) === 떡갈나무 작전 === 히틀러의 친구이자 우방이었던 [[베니토 무솔리니]]가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와 파시스트 대평의회의 결탁에 의해 1943년 7월 25일 실각당하여 이탈리아 어딘가에 연금 중이었다. 히틀러는 한때 자신의 우상이었던 무솔리니가 힘없이 갇혀있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따라서 무솔리니를 구출하기 위한 작전의 지휘관으로 스코르체니 대위가 임명된다. 계속 옮겨지는 무솔리니의 위치를 추적한 끝에 그 해 9월 12일 오후 2시, 스코르체니는 자신이 거느린 SS 소속의 프리덴탈 특수부대와 공군 공수사단에서 차출한 병력으로 구성된 특수임무부대를 이끌고 무솔리니가 연금된 [[아펜니노 산맥]] 골짜기의 그란 사소(Gran Sasso)의 캄포 임펠라토르 호텔에 [[글라이더]]를 타고 돌입, 무솔리니를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이때 부대의 실체를 숨기기 위해 스코르체니 휘하의 특수부대는 이탈리아에 올 때부터 전원 공군 공수부대원으로 위장했으며, 스코르체니를 지원하기 위해 아래쪽 골짜기와 [[케이블카]] 정거장을 장악한 지원부대는 진짜 공군 공수부대였다. 글라이더 12기에 나눠 탄 특공대는 그란 사소 산장 근처 야산 분지의 평지에 강행착륙했다.[* 12기 중 착륙에 성공한 것은 8기뿐이다.] 이 산장을 경비하던 [[이탈리아 헌병군]] 1개 중대는 소총 정도의 빈약한 무장밖에 없었지만 독일군의 습격에 저항했으나 스코르체니가 데려온 친무솔리니파 이탈리아 육군 장성 페르난도 솔레티 장군이 "국왕의 어명으로 무솔리니가 다시 권좌에 복귀한다!" 라고 거짓말을 했고, 독일 특공대가 산장의 통신실을 장악해 통신을 끊어버린 바람에 솔레티 장군의 거짓말을 확인하지 못해 결국 저항을 멈췄다. 스코르체니 부대는 무솔리니를 무사히 구출해 단거리 이착륙이 가능한 [[Fi 156]] 피젤러 슈토리히 연락기로 무솔리니와 지휘관 스코르체니 대위가 먼저 탈출했다. 그리고 남은 SS대원들은 유유히 케이블카로 하산해 공수부대와 합류해 철수했다. 그렇게 빠져나온 무솔리니는 히틀러에 의해 괴뢰정부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의 수장이 되었으며 스코르체니는 [[소령]]으로 진급함과 동시에 [[철십자 훈장|기사 철십자장]]과 친위대 해골 순금반지, 히틀러 친필이 금으로 양각된 금박 독수리 담배 케이스를 수여 받으며 연합국으로부터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27806&cid=42158&categoryId=42158|네이버에 등재된 무솔리니 구출작전 설명.]]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